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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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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설교
    2014.03.09 19:50

    생각의 성문을 지키자

    조회 수 199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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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2014-03-02
    설교구분 주일대예배
    본문 막6:1-6
    설교자 생각의 성문을 지키자

     말씀: 6:1-6

    제목: 생각의 성문을 지키자

     

    사람이 평범한 삶을 비범한 삶으로 바꾸고, 위축된 삶을 위대한 삶으로 바꾸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인생은 결정적으로 변화됩니다. 그것은 바로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축복된 존재가 되는 것은 상당 부분 생각에 의해 좌우됩니다.

    잠언 23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즉 마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사람됨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음속에 품고 생각하면, 그 생각은 반드시 싹이 나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10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듯, 우리 마음에 무슨 생각이든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복 받고 성공적인 삶을 원하거든, 생각 속에 성공적인 축복의 씨앗을 심으면 됩니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며,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 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4:8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치열한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천국 가는 날까지 우리가 좋든 싫든 영적인 전쟁터 안에서 평생 살게 됩니다. 우리의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적장은 사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사단에게 결정타를 입히셨습니다. 사단은 이미 멸망할 운명이 결정된 존재이지만 마지막 심판 날이 오기까지 끝까지 저항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입니다. 때로는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때로는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협박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비극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깝게는 우리 사회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죄악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배후에는 반드시 어두움의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 편재, 즉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어디에나 계시지만 사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한계가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는 초월적인 영적 존재이며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권세입니다. 예수의 이름보다 높은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보다 더 큰 권세는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 이름을 내 세우면 비웃겠지만 예수의 이름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 사단은 그 죄에서 힘을 얻고 그들에게 권세를 행사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다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주장할 때에 사단은 힘을 잃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승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승리를 보장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승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승리를 약속 받았지만 그것을 취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즉 항복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집행될 때까지 계속 저항하는 세력들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얻도록 예수의 이름과 보혈의 권세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 영화를 보면 군사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성문입니다. 물론 담을 타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적의 성문을 여는 것입니다. 성문이 열린다는 것은 바로 패배를 의미합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성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문의 앞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사업상의 거래가 이루어졌고 또한 재판하는 장소나 공개적인 모임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전쟁할 때 이 성문만 뚫리게 되면 곧 함락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문을 쉽게 뚫지 못하도록 그리고 설사 문을 뚫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바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길을 기억 자로 꺾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이런 성문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단은 이 성문을 점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특별히 지켜야 할 성문은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자 오늘 본문(6:1-6)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란 곳에서 자신의 성장하신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 가셨을 때의 일을 말씀합니다. 고향 이외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대단한 환영 받으셨지만 유독 고향에서는 배척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리실 때부터 지켜보았던 고향 사람들은 그가 마리아의 아들이었다는 것, 그의 직업이 목수라는 것, 이름을 알고 있는 형제가 넷,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누이동생이 최소 둘이라는 가정사를 꿰뚫고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해 알만큼 안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겉모습으로만 보고 판단했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효과적이고 지혜로왔고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의 눈에는 단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집의 목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중에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로 왔지만 그들은 단지 고향 남자 정도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가진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 친척, 가족에게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주님을 믿지 않고 있다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메시야이심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해 줍니다.

    혹시 직장에서는 인정받지만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 아내와 자녀들에게 배척당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가정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예수님도 그렇게 당하셨다고 핑계 대고 위로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결과 안타깝게도 그 곳에서 예수님이 아무런 능력을 행하시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막아버렸습니다. 그들의 제한된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소한 일까지 관심을 가지실까?’ ‘이처럼 형편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복을 주시겠어?’ 이렇게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여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완벽하거나 완전한 자를 통해서 능력을 나태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연약하고 형편없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통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고향에서는 기적을 거의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준비해간 물이 떨어져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알프스 계곡 사이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단숨에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몹시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이 물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구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떨리고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계시판을 잘못 읽었습니다. 그것은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것이 아니고, '포이존(poissun): 낚시금지)'라고 쓴 것입니다. 이 청년은 '포이존' '포이즌'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몸에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행동 뿐 아니라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죽음으로 이르는 생각이 있고 생명으로 이르는 생각이 있음을 성경은 보여 줍니다. 생각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인격은 운명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결국 우리의 생각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육체를 즐겁게 할까라는 육신의 생각에 몰두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우리를 넘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타켓으로 삼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바로 성문과 같이 우리의 삶이 시작되는 입구이며 삶을 조정하는 통제소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바로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침범하여 자기 영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단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내어 주면 우리는 완전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삶, 실패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성문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가 미워지는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까? 나는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아침 새벽에 새벽 기도를 할 때 갑자기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사람이 떠오르면서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어떻게 확실히 갚아 주지? 등등 비판적인 생각, 미워지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방해받고 있음을 압니다. 만약 그 생각에 빠져 있으면 한 두 시간이 그냥 물 흘러가듯 가 버리고 마음이 더 심란해집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 생각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사단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순전히 내 생각인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계속 놔두면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사단으로부터 온 생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낙심, 비판, 두려움, 걱정, 의심, 불신, 불안...이런 생각이 들면 재빨리 거부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사단은 그 생각을 통해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할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대부분 영적 전쟁은 인간의 생각 속에서 일어납니다. 사단은 태초에 하와를 유혹할 때에 먼저 생각 속에서 의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너무 하시지 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도록 하면 무얼 먹고 살래?’ 이처럼 사단은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면서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보호와 돌보심을 불신하도록 부추깁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까? 나를 돌보시는 걸까?’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염려와 불평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 같아.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일어나야 하지?’

    17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힘든 광야 생활에서 물이 없자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했습니다.

    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음이더라

    혹시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의심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의심의 특효약이 있습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구약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입니다. 의심이 들고 불평스런 마음이 들 때마다 성경에서 하나님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자세히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과 기도는 염려를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꾸어 줍니다.

    만약 염려 속에 계속 빠져 있으면 결국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제 자신도 과거를 돌아보면 가장 힘들 때 마지막에는 버림받은 느낌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려운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의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생각과 감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기쁨과 평안, 승리 같은 것이 우리의 생각에 꽉 차 있으면 마치 우리의 삶이 자석에 끌리듯이 그런 것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오래될 때 특정한 성향을 이루게 되는 것은 마치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계속 할 때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의 바닥을 점점 더 깊이 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향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을 의지할 때 조금씩 생각의 물줄기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뭔가 놀랍고 새로운 법칙을 찾기 위해서도 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읽지 마십시오. 오직 나 자신의 생각이 새로워지도록 기도하고 읽으십시오.

    인간의 생각은 가장 깨뜨리기 힘든 견고한 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반대하는 이론과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늘보다 높아진 교만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무너뜨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고후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는 생각을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성공한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이 쓴긍정의 힘이란 베스트 셀러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위대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긍정은 스스로 자신감을 갖도록 자신을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강해.’ ‘너는 성공할 수 있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합니다. 로젠탈 효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긍정의 힘은 절대로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긍정과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세상만사는 마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집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을 할 때 특히 긍정적인 사고와 비전을 강조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 소년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을 자주 인용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을 무너뜨리기에는 그가 너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감히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반대로 생각했다. 골리앗의 몸집이 너무 커서 그가 던진 돌팔매가 절대로 빗나갈 수 없다며 도리어 자신만만하게 덤볐다. 생각의 출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생각은 하나님의 축복의 열쇠가 되는 만큼 사단이 가장 틈타는 우리의 성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4:11-12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합니다.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생각 관리를 잘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남아프리카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 만 감옥에 있어도 건강을 잃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데 만델라는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만델라는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로 생각을 관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생각을 잘 관리했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공하는 사람들은 생각 관리를 잘한 사람들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좋지 않는 것은 나에게 주시지 않는다는 믿음 갖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생각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려가고, 보디발 아내 모함으로 감옥생활을 해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할 때 애굽의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제 생각부터 복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생각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게 하십시오. 축복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처음에는 찬란한 생각을 하지만 어느새 그 생각을 의심하고 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1만 번에서 5만 번까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 중에서 절반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보다 더 강도가 세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 진리의 생각, 믿음의 생각들을 끝까지 강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건전하지 못한 생각들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에게로 복종시켜야 합니다. 강하게 붙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과 묵상해야 합니다. 입술로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견고한 진을 파하고 나쁜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로 복종시켜 주실 성령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단이 주는 부정적인 생각을 잘 분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히 거부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죄로 오염되어 있다면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가장 긍정적이고 가장 능력 있고 가장 창조적이며 가장 확실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계속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인 믿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나 깨나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계속 고백하고 선포하십시오. 성령께서 능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견고한 진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생각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새롭게 변화된 우리의 생각을 통해 새롭게 운명이 바뀌고 새롭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행복한제자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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