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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방송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자!
설교일 | 2013-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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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구분 | 주일대예배 |
본문 | 히2:1-4 |
설교자 | 이현기 목사 |
말씀: 히2:1-4
제목: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자!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성도의 자세)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여러 경고들 중에서 첫 번째 경고입니다. 이 경고는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면, 여러 경고들이 많이 나오는데, 경고 표지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싫지만 경고들을 주의하지 않으면 위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서신 전반에 걸쳐 경고 표지를 연속적으로 제시합니다. 본문은
구원에서 멀리 떠나 표류하는, 다시 말해 구원을 등한시 하는 위험에 대한 경고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을
따른 길에서 이탈할 위험이 있었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 역시 동일한 위험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다소 동의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즉 그리스도의 주권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우리는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복음(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복음을 주신 그리스도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복음을 반복적으로 새기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갈 수 있습니다(고전15:1)
그 분에게 경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순종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크게 나누면,
1. 경고: 들은 바에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1절)
2. 이유1: 율법 아래서 받은 심판을 엄격하다(2절)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 주어짐.
-범죄함과 불순종은 심판받음.
3. 이유2: 구원 아래서 받을 심판은 훨씬 더 엄할 것이 분명하다(3-4절)
-구원이 너무 크므로
-구원의 말씀은 주께로부터 주어졌으므로
-증인들이 너무도 많으므로. 주님, 목격자들, 성령과
하나님.
우리가 들은 진리에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들은 진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에 관한 진리,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진리입니다.
‘삼가다’라는 말은 주의를 기울이다.
매우 신중히 듣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경고가 얼마나 준엄한지를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복음에 대해 단지 주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복음에 더욱더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실 최종적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구원은 이제 인간에게 베풀어졌습니다. 인간은 이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간은 이제 이 세상에서 바르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의 시련과 유혹들, 멍에와 결박들, 죄와
사망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이 세상에서 승리의 개가를 울리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또한 세상에서 완전함 가운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복음에 더욱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구원의 진리에서
떠내려 가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에서 떠내려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떠내려가다” (파라뤼오멘)라는 말은 흘러 내려가다, 미끄러지다, 미끄러져 가버리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져 나가는
것.
어떤 진리가 마음에서 잊혀지고
사라져버려서 기억해 낼 수 없게 되는 것.
따라서 1절의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는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다'의 의미로 복음에 대한 관심 부족과 부주의로 인해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가 복음의 진리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떠나 위험하게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어느 교회나 개인이라도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구원과 천국은 없어집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그 말은 부주의하게 혹은 무심결에 흘리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어진다”라고 했습니다.
떠내려간다는 것은 표류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항구를 떠나 표류하는 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장이 다음과 같이 행동함으로써 항구에서 떠내려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계산착오, 부주의, 무기력함과 자기 만족, 태만, 졸음, 술 취함. 등.
우리는 구원의 진리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진리로부터 우리의 삶이라는 배가 떠내려가는 일이 없도록 그 진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대부분 우리 생이 위협이 되는 것은 재난에 처하게 되는 상황이기보다는
죄에 빠져들어가는 상황이다. 의도적으로나 잠시 동안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날마다 그분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느
한 순간에 극악한 죄를 범하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거의 무심결에 어떤 상황에 빠지게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삶을 망쳐버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표류하는 삶의 위험에 대비해서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the letter to the Hebrews, p.138f)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벧후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벧후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신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사17:10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
사17: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2-4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 간절히 삼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행위가 진노를 초래하였다면
복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훨씬 더 중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 우리가 구원으로부터 떠내려가지 말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
히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유대인들은 율법이 견고하게
되었다(구속력이 있다)고,
다시 말해서 율법이 유효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전반에 걸쳐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을 심판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 경고의 말씀이 얼마나
엄한 지를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율법 아래서 받은 심판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란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았던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킵니다(출19:1 이하).
이 위대하고 장엄한 피조물들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들로 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순간이었으며 천사들은 인간에게 한 가지 위대한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을 주었습니다.
요점은, 율법 아래서 받은 심판은 매우 엄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범죄함과
불순종은 그것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범하면, 그는 판단과 정죄를 받고 율법에 규정된 형벌을 받았습니다.
2. 우리가 구원으로부터 떠내려가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
아래서 받을 심판은 율법 아래서 받은 심판보다 훨씬 더 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는 다음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구원이 너무도 귀함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심판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와 악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즉 거짓말과 속임, 도둑질과 살인, 폭력행위와 살해와 전쟁, 부도덕과 간음과 여러 음란한 것들, 음담패설과 추행과 타락한 행동, 결손가정들과 상처와 아픔, 질병과 사고와 고통 등 모든 악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제대로 기록할 수 조차 없는 보다 많은 악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이 그토록 엄청난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입니다.
-구원은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많은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를 구해 하나님께로 인도해 줍니다.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해주고, 우리에게 영생, 즉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가는 영광스런 특권을 부여해 줍니다. 하지만 구원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즉 우리가 세세무궁토록 살아가며
일할 완전한 세상, 어떤 고통이나 사망도 없는 세상을 줍니다. 하지만
구원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동안 쌓아둔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화려한 집이
있으며, 거할 곳이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거기에는 면류관들과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 의무와 책임, 즉 영원히 주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영광스런 삶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구원은 더 많을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구주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줍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주, 즉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시고 죽으신
분을 줍니다. 구원은 우리가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구주, 즉
우리의 삶을 다하여 충성할 수 있는 구주를 주며 우리는 그런 삶이야말로 최선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외에도 더 언급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이 주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토록 귀한 구원을 등한시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구원을 등한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결코 주실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 구원을 가리켜
특히 "이같이 큰 구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구원'이라는
단어는 쓰고 있지만 그 의미는 무슨 '가난에서의 구원', '질병에서의
구원', '소외와 압제로부터의 구원' 이런 것들뿐입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두고 '큰 구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작은 구원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큰 구원'은 바로 '사람을 죽음의 저주에서
살려 주는 것'이며, 이런
'큰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 구원의 말씀은 주께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심판을 벗어날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을 통해서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그분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우주의 주권자시요, 대주재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토록 귀한 구원을 등한시한다면 우리에게 임할 심판은
훨씬 더 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역시 신앙에서
멀어져서 표류할 수 있는 많은 미묘한 영향 아래 노출되어 있습니다. 유혹의 조류가 비록 은밀하고 느리게
흐르지만 강력하기 때문에 해변을 벗어나 표류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합니다. 우리는 신앙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유혹에 대항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앞에서 ‘흘러 떠내려간다’는 말을 정의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르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말은 물살이 빠른 강에 사는
물고기를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이 아무리 빠르고 급해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었거나 혹 병든 물고기는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냥
물살을 따라 흘러 떠내려가고 맙니다. 아니 건강하게 살아있는 물고기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물살이 얼마나 거센지 모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떠내려가고 맙니다. 더구나 병들었거나 죽은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풍조나 물결을 따라 흘러 떠내려가지나 않는지 염려해야 합니다. 신앙의 표류를 깨닫게 해 주는 기준은 '성경 말씀'입니다.
어떨 때 그리스도인들은 표류하게
되는가?
-태만하거나 주님께 대한 자신의 헌신에 스스로 만족할 때.
-이전에는 분명하게 거부하였던 죄악에 다시 빠져들 때
-도덕적 기준을 타협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불순종할 때.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소극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때.
3)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구원의 증거를 보여주신 첫 번째 증인이셨습니다. 천사들이나 사람들이 아닌 주 예수님께서 직접 이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신
그분의 삶을 목격한 자들이 그분 안에 있는 구원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독자들은 그리스도를 실제로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기초를 성경에 기록된 목격자들의 기사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위대한 구원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복음의 메시지를 확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여러분, 강은 아래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런 강물 위에 떠 있는
사람이나 배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연히 강물과 함께 '떠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물결을 거슬러 헤엄을 치는 사람, 키로 방향을 잡고 엔진으로 스크류를 돌려서 전진하는 배만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가만히 있는 교인'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교회'는 반드시 아래쪽으로 표류해 가게 만드는 강물과 같습니다. 유혹의 조류는 은밀하게 느리게 흐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을 강렬하게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구원 확신'을 중심으로 붙잡고 오직 '성령의 능력'에만 의지함으로써 이 압도적인 '불신앙의 조류'를 거슬러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떠내려가는' 사람도 떠내려가지 않는 사람과 일단은 '똑같은 물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주일예배에 출석하고 있으며 똑같이 아무 교회의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똑같은 '물속'에
있는 사람들 중에 '혹 떠내려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물속에
있다고 절대로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행복한제자교회 교인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목사나 장로 집안의 자녀라 하더라도, 아무리 네비게이토선교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절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 설교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은혜가 되지 못하면 이미 흘러내려 가기 시작하고 있는 첫 징조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넘치고 있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표류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들은 바 말씀에 더욱 집중하여 말씀에 철저하게 굴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계속 묵상하여 복음의 감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믿음에서 떠나 표류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천사들이 전해 준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거부한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훨씬 높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해 주신 구원의 소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율법의 메시지를 능가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고 진정한 용서를 제공합니다.
복음을 거부한 자들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원의 길을 거절하였습니다.
구원의 메시지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깨어 있고, 전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복음에 두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고 날마다 묵상함으로 순종과 헌신의 동기가 되도록 하며, 이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담대해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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