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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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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설교
    2013.12.08 22:29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삶

    조회 수 117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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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2013-12-08
    설교구분 주일예배
    본문 딛2:1-15
    설교자 이현기 목사

    말씀: 2:1-15

    제목: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삶

     

     

    오늘 읽은 이 디도서에서 우리의 이목을 끄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1 9절의 “바른 교훈” 2 1절의 “바른 교훈” 2절의 “온전케 하고” 8절의 “바른 말”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바른이라고 번역된 말은 쉬기아이누세스로서 건강한 또는 알맞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병든가르침과 대조되는 건강한, 온전한 가르침을 뜻합니다.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바른 교훈을 받아 올바른 교회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뿐 아니라 왜 그렇게 행해야 하는가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동기 유발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행동이란 무엇인가? 또 그 근거는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11절부터 14절까지는 교리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문단,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의무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고, 오늘 말씀은 각 계층에 필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른 교훈을 듣고 올바른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1. 늙은 남자 - 절제, 경건, 신중, 그리고 건전한 믿음, 사랑, 인내함의 덕목을 갖출 것을 이야기합니다.

     

    늙은 남자들은 두 가지 권면, 즉 위엄과 성숙으로 요약됩니다. 늙은 남자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해야 합니다. 그들은 나이에 합당하고 내적 절제를 드러내는 엄숙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 분노, 말을 살피고 자제해야 한다. 사려 깊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늙은 남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믿음, 사랑, 인내에서만 아니라 성품의 모든 면에서 온전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늙은 여자 -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도록 하고 그 대신 선한 것을 가르치며 봉사하는데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젊은 여자들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늙은 여자들 역시, 양육을 받아야 되고, 가르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은 거룩하여야 하는데, 이는 헌신과 책임을 다해 자신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여사제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나이든 여성들에게 두 가지 무절제함이 올 수 있는데, 바로 험담과 술의 중독입니다.

     

    3. 젊은 여자 -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신중, 순전, 집안일을 하며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늙은 여자들에게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이거나 로맨틱한 사랑이 아니고 에로틱한 사랑은 더욱 아니며 그보다는 희생과 섬김의 사랑입니다. 젊은 부인은 이 면에서 훈련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사랑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젊은 여자들은 신중하며 순전한 자들이 되도록, 또 집안 일을 돌보도록훈련되어야 합니다.

    젊은 남자들과 동일하게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것, 또 순전하다는 순결하다는 뜻이고, 그들은 남편에 대한 순결을 지키며 자신의 정욕과 욕망을 조절해야 합니다.

     

    집안일을 돌보도록한다는 말씀은 여자들이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든지 부인은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가정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는 뜻이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근래에, 여자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욕구가 가장 중요하며 훌륭한 아내나 어머니가 되기 전에 자신들의 행복을 먼저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도록 권장해야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세상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일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치 있게 생각하신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높이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4. 젊은 남자 이와 같이 신중하고,

     

    이와 같이는 젊은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 모두에게 절제가 요구된다고 하는 유사성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계발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자질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다스려야 할까요? 의심할 여지없이, 혈기와 혀와 야심과 탐욕을 다스릴 것과 특별히 성적 충동을 포함한 육체적 욕망을 다스림으로써, 젊은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결혼 전의 순결과 결혼 후의 정절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불변하는 표준에 철저히 헌신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젊은 남자들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권면은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5. 디도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흉내 내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도전과 영감을 줍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을 교회의 본보기로 내어 놓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

     

    가르침과 본, 들려 주는 것과 보여 주는 것은 언제나 강력한 짝을 이룹니다. 그리고 디도의 가르침이 지녀야 할 세 가지 특징은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이어야 했습니다.

     

    5. - 신분의 성격상 순종하게 되어 있었지만,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주인을 섬기라고 권합니다.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 것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되고, 대적자 들이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되고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2:5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적극적으로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10)고 그 당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고 나아가 그 분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은 특권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따르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합니다. 은혜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이제 두 번째 단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른 교리 (2:11-14)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이제 의무에서 교리로 옮겨 갑니다. 실로 세속적인 의무에서 장엄한 교리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바울은 먼저 교리를 설명하고 그 다음에 그러므로하면서 의무를 나아가는데, 여기서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먼저, 윤리적 의무로 시작해서, 왜냐하면과 함께 교리적 근거를 놓고자 합니다. 원문에는 11절이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윤리적 권면의 근거로 삼고 있는 특정한 교리는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주님의 두 번 나타나심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11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고 말하고, 13절은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 오심은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나타남(2:11-12)입니다. 은혜가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며(34:6),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일 수 있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속죄의 죽음에서 분명하게 눈부시게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11).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신 것만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14).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시고"(14)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14)해 주셨습니다. 3:7에 보면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 "영생의 소망을" 주셨으며 "후사가 되게"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복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그럴만한 자격도 공로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진노를 받아 마땅하건만 이렇게 해 주셨으니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합니다. 즉 훈련하신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단지 구원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키는 일도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는 두 가지 주된 교훈을 가르칩니다. 첫째, 소극적으로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고 가르칩니다.(12절 상) 둘째, 적극적으로는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라고 가르칩니다.(12절 하)

     

    이 은혜는 우리의 옛 생활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 즉 경건치 않은 것에서 경건함으로 자기 중심성에서 자기 절제로, 세상의 사악한 방법에서 서로를 공평하게 대하는 것으로 돌아서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은 영광의 나타남’(2:13-14)입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신 분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은 은혜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는 영광 가운데서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실상, 이 미래의 영광의 현현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 중 최상의 것입니다. ‘복스러운 소망을……기다리게 하셨으니.’ 이것은 복을 가져다 주는 소망입니다.

     

    첫 번 나타나심은 "은혜"의 나타나심이요 두 번째 나타나심은 "영광"의 나타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주목하십시오. 첫 번 나타나심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의 나타나심이요. 두 번째 나타나심은 세상 죄를 심판하실 심판 주로써의 나타나심입니다. 첫 번 나타나심을 시작이라고 말한다면 두 번째 나타나심은 완성입니다. 우리 주님은 첫 번 나타나심과 같이 약속대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독교 시대를 개막하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이며, 그 시대를 마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한쪽을 되돌아보고, 다른 한쪽을 내다보게 합니다. 우리는 두 시대 사이에서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까마득한 과거나 먼 미래에만 연연하고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 살지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우리는 오늘 현실에서 살아야 합니다늙은 남자들은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해야 합니다. 늙은 여자들은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고 선한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순결하고 신중하며 남편과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 남자들은 특히 신중해야 합니다. 디도는 좋은 교사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종들은 진심으로 주인에게 순종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악을 버리고 경건함과 의로움과 근신함으로 이 세상에살아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무엇을 근거로 바울은 이러한 권면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현재 행동을 위한 근거가 될까요?

     

    바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으며,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를, 이 시대를 사는 최선의 방법은 육체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영적으로 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반대 방향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를 돌아봄으로써 은혜의 나타남( 그 목적은 우리를 모든 악에서 건지사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정결케 하는 것이다)을 기억해야 하고, 앞을 내다봄으로써 영광의 나타남(그 목적은 초림 때 시작한 우리의 구원을 재림 때 완성하는 것이다)을 열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의도적으로 적응시키는 것, 이러한 뒤돌아봄과 내다봄,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의 빛 안에서 살려고 다짐하는 것, 어제와 내일의 빛 안에서 오늘을 살고자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의 삶을 통해 이루어야 할 훈련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언을 외쳐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현재,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는 그리스도의 과거와 미래의 현현에 의해 영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케논 헤이 에이켄은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을 은혜의 학교의 두 창문과 같다고 했습니다. 서쪽 창문을 통해서는 갈보리 산으로부터 장엄한 광선이 흘러 들어온다. 동쪽 창문을 통해서는 더 밝은 날의 전령인 떠오르는 태양의 광선이 빛난다. “은혜의 학교는 이처럼 훌륭한 조명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서쪽과 동쪽에서 들어오는 빛 중 어느 것이 없어도 살 수 없다.”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빛나게"해 드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뒤돌아 봄으로써,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열망함으로 힘과 지혜를 얻어, 늙은 남자들은 위엄을 갖추고 성숙해야 합니다. 늙은 여자들은 거룩하며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젊은 남자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디도는 좋은 교사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종들은 양심적이고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악을 버리고 경건함과 의로움과 근신함으로 이 세상에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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