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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게시판
말씀: 롬1:8-17
제목: 복음의 능력
바울은 로마 신자들과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들의 믿음은 바울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들의 믿음이 세상에 두루 알려지고 있었다. 로마에 날로 번성하는 교회가 있고 악한 도시에 순전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믿음을 증거해 주는가?
바울은 복음 증거하는 일에 항상 마음을 다하여 헌신했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였다고 하였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이 신자들을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바울은 제국의 수도를 방문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았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이 어떻게 열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바울은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기도했는데, 실제로 그는 비록 체포되어 모욕당하고 난파당하기도 하고 독사에 물리기도 했지만 안전하게 로마에 당도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더욱 깊어지게 돕기 위해서 그들을 방문하기를 원했다. 또 그것이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에는 주고 받는 것이 있다. 바울은 자신이 무언가를 얻으며 격려 받고자 했다. 바울은 자신이 단지 가르치고 베푸는 자로만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상호 격려를 배울 수 있다.
바울은 10절에서 언급한 대로 로마에 가려고 했지만 그 길이 막혔다. 바울의 원래 계획은 로마를 자신의 선교 사역지에 포함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열매 맺기를 원했다.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고 하였다. 바울의 빚은 무엇인가?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구세주가 되신 그리스도께 빚진 자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세계에 빚진 자였다. 우리도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당해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께 빚진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으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로 구원의 메시지를 듣게 하셨기에 빚진 자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원하는 수단이 될 때마다 늘 그 빚을 갚고 있는 것이 된다.
바울은 빚을 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완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바울은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였다. 복음 전하는 자가 수치와 고난을 당할지라도 결코 복음을 부끄러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의 지성이나 로마의 힘에 의해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바울은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듣도록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다. 능력을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 dyanmis는 우리 시대의 단어인 dynamite의 어원이다. 복음은 영적인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복음은 특정한 상황에서 세상적인 관점과 전통을 깨뜨림으로써, 건설을 위해 새 길을 닦는 것, 무너뜨리고 심지어 파괴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돌 같이 굳은 맘에 복음이 들어가면 그 장벽을 뒤흔들 수 있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 제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본래적인 능력이다. 복음은 본질상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재해 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차원까지 나아간다. 구원은 죄가 더럽히고 파괴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까지를 말한다. 또한 구원은 사람이 믿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의라는 뜻이다. 이것은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법이다.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이 복음에 나타나 있다. 복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의에 관해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효력이 있는 의로서 사람이 믿음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우리는 그분에게 올바른 자가 되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하였다.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마땅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으며 그 대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한다. 이 표현의 취지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있다.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히 올바르게 된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박국 2:4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갈3:11, 히10:38에서 인용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글에 나타나며 유대인 신자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뜻은 1)믿음으로 의인이 된 자는 살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게 하며 그 결과 그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2)의인은 믿음을 따라 살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신실한 태도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이라는 뜻이다. 요약하면,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의 반응 때문에 살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영생을 얻게 되고 삶에서 부요함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뜻한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신뢰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의 새로운 삶의 원천이다.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며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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